이 책이 집에 굴러다닌지는 몇 년 되었는데 여태 읽지를 않고 있었어요. 며칠전에야 오랜만에 독서나 할까 싶어서 집어들었는데 이거 상당히 재밌더라고요. 이런 개그와 소란스런 분위기를 구사하는 작품은 오랜만에 접하는 터라 더더욱 맘에 들더군요.
줄거리는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가까운 미래.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사라진 코번트리 성당을 복원하겠다는 일념으로 불도저 같이 밀어붙이는 슈라프넬 여사의 닦달에 시달리는 역사학자들의 꿈과 사랑이 넘치는 시간여행. 그리고 시간여행의 와중에 발생하는 인과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범인은 언제나 집사라는 걸 알려주려는 시공간 연속체의 의지가 뒤섞여 벌어지는 한바탕의 소동입니다.
주된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라서 그런지 그 시대의 분위기나 자잘한 일상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 편인데 다른 소설들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더군요. 따분하고 해괴망측하게 고루한, 하지만 나름의 낭만이 있는 시대. 기회가 되면-그러니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지갑에까지 스며들면- 이 책이 나온 동기가 된 「보트를 탄 세 남자,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읽어보면 좋겠더군요.
그리고 읽다가 좀 독특하면서도 흔한 걸 발견했는데 책에 이야기 이외의 것이 없더라는 겁니다. 장편으로 분량이 상당함에도 시간여행의 일상화로 인한 폐해라던지 미래세계에 빗대어 현재의 사회문제를 비판한다던지 하는 게 없어요. 심지어 그 흔한 존재에 대한 의문도요. 그러니까 마치 라이트 노블 같더라는 겁니다. 유일한 교훈이라면 '신은 사소한 것도 보고 계신다.'가 되겠군요. 전에 이 작가의 단편인 「사랑하는 내 딸들이여」를 봤을 때 받았던 충격에 비춰볼 때 좀 의외였습니다.
하긴 책에 대한 오마쥬로서 쓴 책에 그 단편에서처럼 역겹고도 징그러운 부정(父情)-이라기보단 약자에 대한 폭력과 기만으로 가득한 성적집착 같은 걸 다루는 것도 적절치 않겠지요. 주 무대가 빅토리아 시대인걸요. 신사숙녀의 이야기에 그런 것을 넣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 건 20세기나 되어야 어울리니까요.
책의 분량에 비해서 내용의 무게가 좀 균형이 깨지는 책입니다. 하긴 마이클 크라이튼의 「타임라인」을 읽을 때도 그러했지요. 뭐, 그쪽은 시공간 연속체의 의지 보다는 평행우주에 가깝지만 날카로운 사회비판 같은 건 없었다는 점은 비슷하니까요. 어쨌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쓰고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