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혁명」 아라카와 히로 / 민용식 번역 / 대원씨아이
우선 감상에 앞서 15일 출간되는 책을 21일에나 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한탄하며 어쨌거나 재밌는 소설을 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도서관 혁명'은 도서관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고, 이만하면 무리 없이 끝났다는 생각도 듭니다.
읽어보니 애니가 3권 분량에서 끊을만하더군요. 4권은 통째로 하나의 이야기라서 따로 2기를 내지 않는 이상 제작하기가 모호했겠더라고요. 그동안 양화대와 도서대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다루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로 확산하여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스케일로 커지니, 더 찐득해져야할 연애이야기가 다소 차분해져 버렸다 싶기는 해도 그저 양산되는 다른 라노베와 달리 주제의식이 부각되는 작품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냈으니까요.
제가 이 작품에서 좋구나 싶었던 건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글로만 가능한 표현과 사소한 곳에서 쓸데없다 싶을 만큼 치밀한 묘사랑 예전에 전민희 작가의 '세월의 돌'을 읽었을 때만큼이나 속이 뒤틀리는 닭살행각이 참 좋았지요. 그러고 보니 아라카와 히로 또한 아줌마로군요. 아무래도 아줌마들이 글 쓰는 스타일이 취향인가 봅니다.
그런 곁가지를 떠나 다시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를 보면, 분명히 법이 기능 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검열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에 대한 그럴싸한 상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권력자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무관심 덕에 소수의 부당한 이득을 위해 발의된 법안을 통과시켜버리는 퇴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열심히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요. 그 고민이 비록 일본이란 장소에 한정되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당장 내 주머니에 굴러들어오는 돈 몇 푼 때문에 삽 말고 다른 게 머리에 들어 있을까 싶은 사람이 내건 되지도 않는 사업에 찬동하는 무리가 우글거리는 나라에서는 그리 상상 속의 일 같지도 않긴 합니다.
소수의 이권과 무지한 선의와 대중의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악랄한 제도의 폐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만큼 쉽게 독자에게 파고드는 작품은 여태 보지 못했을 만큼, 오락성이나 흐트러지지 않는 일관성은 뛰어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미디어양화법은 정상인 사회라면 나올 수 없는 법이거든요. 합법적으로 출간된 저작물을 검열하겠답시고 화기를 이용한 전투와 저작자들에 대한 개인정보 수집이 보장되는 법이 민주적으로 통과 가능한 나라라니,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법이지요. 아, 경찰이 범죄자를 잡겠다고 호기심에 사건을 검색한 수많은 이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나라에서는 군사독재 시절에 비슷한 법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의 말마따나 미디어양화법이란 마귀가 출몰하는 세상이 된 원인. 즉, 미디어양화법의 통과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모호하게 처리되어버립니다. 사실 작가도 도리가 없었겠지요. 말이 안 되는 법이 생기려면 역시 말이 안 되는 일이 생겨야 하는데 - 쿠데타가 일어난다든지, 계엄령이 선포된다든지. 그러고 보니 쿠데타를 일으키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낼름하고도 29만 원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전직 대통령이 있는 나라도 있긴 하군요. - 그런 일이 생기면 당연히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법 위에서 통제하는 꼴이라서 사람들이 저항하는 것도 미디어양화법이 아니라 법을 밀어붙인 정부가 되어서 반정부시위나 내전이 되어버리는데 이를 무리하게 이상한 법이 통과된 민주주의 사회로 묘사하려다 보니 법안통과에 얽힌 이야기가 밝혀질 수 없는 거죠.
도서관 시리즈가 아무리 잘 짜여진 거짓말이라도 그 핵심이 되는 미디어양화법 탄생에 대한 부분이 없기에 결국은 오락소설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견 생길 수도 있을 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법안이 생긴 뒷이야기를 명확히 하지 못하니 설득력이 반감될 수 밖에요. 잔뜩 변죽만 올려놓고,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하는 격이니까요. 하긴, 윗사람들 눈에 들려고 시너와 흥분한 철거민이 있는 옥상에 경찰특공대를 밀어 넣어서 사상자를 만드는 나라에서는 그런 빈칸 따위 독자가 얼마든지 채우며 읽을 수 있으니까 트집 잡을 건 못 되는 부분입니다.
어쨌거나 책으로 전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는 너무나 명확하고도 재미있게 와 닿았습니다. 뭐, 결국은 연애물이라는 평가에도 고개가 끄덕여지고요.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참, 제목이 '도서관 혁명'이기는 한데 이거 도서관 시리즈 전체에 대한 감상입니다.
그래서 혁명에 대한 내용 설명 같은 건 없어요.
덧1: 작가 후기에 보니 양화위원회의 주장을 다루지 않았다는 독자의견을 받았다는 거 보고 일본에도 참 또라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덧2: 일본어를 모르니 번역에 대해 뭐라 하긴 그렇지만 꼭 기화(奇貨) 같은 국내에서 쓰지 않는 말 엄연히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이 긴하군요. 그래도 라노베 같은 가벼운 읽을거리에 쓸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그 외에도 군데군데 한국어로는 이상한 문장들이 눈에 밟히던데 제 취향의 번역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