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방훈련 다녀오며, 이것저것 생각

Posted at 2008/03/13 20:14// Posted in 무엇
6분의 2 확률

2/6의 확률

예비군 5년차면 사격 안할 줄 알았는데 8시간짜리 훈련이 나온 덕에 대충 쏘고는 현역시절이었으면 소대장한테 갈굼당하고 PRI 삼매경에 빠졌을 법한 명중률을 내고 왔습니다. 그런 건 어쨌거나,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숙자를 봤는데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분이건만 갑자기 왜 사람많은 지하철 역에 저러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곧바로 "서울에 도착해서는 터미널에서 한참을 멍하니 사람구경했다."는 현역시절에 휴가 다녀온 고참이 해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군대에서 맨날 보는 똑같은 얼굴들과 똑같은 산야에 매여있다보면 답답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은 법이지요.

사람 많은 역주변에 노숙자가 많은 것은 어쩌면  생활이 편하다는 것 외에 그런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치열하지만 안락한 틀에서 벗어나 있어도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평소에 거들떠 보지도 않는 부분인데 괜시리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군복의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군복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더군요.

그러니까 역을 나와 저녁은 뭘 먹나를 고민하면 걷다가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기에 서둘러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은 저하고 아줌마 한 분. 그런데 이 아주머니, 저보다 먼저 탓음에도 층을 누르지 않고 머뭇거리더군요. 마치 몇 층을 눌러야할지 모르는 것처럼 손을 뻗은 채로 있어서, 제가 갈 층을 누르니 그제야 자기가 갈 층을 누르더라고요.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목적한 층을 누르기까지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망설임에서 저와 둘이 타고 있다는 것에서 불안을 느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군복에 이름이 오바로크로 붙어있고, 예비군 표시에 출신 사단마크까지 잘보이도록 붙어있어서, 개인정보를 사복보다 많이 담고있는 옷인데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은 그만큼 세상이 흉흉하다는 증거. 아무래도 '인적드문 곳에서 앞에 가는 여성이 있으면 거리를 벌려라'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여성과 함께 타게 될 경우, 자기가 갈 층을 먼저 눌러라'를 머리 속에 있는 "의심받는 것 같아 조금 기분은 나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타인의 불필요한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 개의 작은 실천" 항목에 세부항목으로 넣어야 겠습니다. 물론 ○○ 개가 몇 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2008/03/13 20:14 2008/03/13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