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브리타니아 제국에 의해 식민지가 된 일본이랍니다. 브리타니아란 건 가상 국가지만 영국을 가리키나 본데 아마도 제국주의 시절의 영국이 기울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겠냐는 발상에서 출발한 듯 싶기도 하네요.
과거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에 동참했던 일본이 식민지배를 받는 꼬라지를 그린 만화를 만들었다 해서 논란이 있었는데 뭐, 별로 불쾌하지도 않더군요. 이런 일본식 판타지에 화낼 거나 있겠습니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따위는 손톱의 때 만큼도 없습니다. 그저 '세상 참 더러워서 못 살겠네 한 번 엎자.'는 를르슈와 '그렇게 확 엎으면 멀미난다. 천천히 바꾸자.'는 스자크가 있습니다. 이 둘이 만화를 끌어가는 핵심인물들이지요.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주인공을 충돌시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나쁠 건 없습니다. 둘이 원래 친구라는 점에서 건담시드에서의 아스란 자라와 키라 야마토의 관계가 생각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찌질하기 보다는 라이토와 L의 관계가 차라리 어울리겠습니다. 아무튼 웃긴 게 뭐냐하면 둘의 입장입니다.
스자크는 일본의 마지막 총리의 아들랍니다. 그런데 브리타니아가 쳐들어 올 때 그쪽에 붙어서 명예 브리타니아인이 되었답니다. 설정이 성계 시리즈에 나오는 진트가 떠오릅니다. 그 자식은 그래도 아버지의 명백한 반역 행위로 귀족이 된 터라 고향을 떠난 뒤로 감히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만 이 스자크란 녀석은 브리타니아 군에 들어가서 브리타니아를 바꿔보겠다고 합니다.
지랄! 지가 무슨 이완용이야 송병준이야. 사실 그런 똘똘한 악당들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더 나빠요. 일본 만화에 자주 나오는 개똥 철학 중 가장 싫어하는 맹목적인 평화에 대한 추종을 하거든요. 애초에 브리타니아에 자발적으로 합병한 것도 아니고 침공 당했으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에도 테러와 보복으로 피를 봐선 안된다고 합니다.
언뜻 이상적인 생각처럼 보이지만 노예근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피해자인 일본의 저항세력의 폭력은 나쁘다 하면서도 폭력으로 제압하고 있는 브리타니아의 잘못을 묻지 않으니 실로 개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진해서 군에 들어 갔으니 오히려 폭력에 의한 압제에 일조하는 셈이로군요. 이념이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라고는 안 합니다만 적어도 부당하게 빼앗긴 걸 되찾겠다는 사람들을 바보 만드는 짓은 안 해야죠.
를르슈는 브리타니아의 왕자랍니다. 부제에 자기 이름을 올릴 정도로 실질적인 주인공인데 이 녀석은 매우 개인적인 동기로 일을 벌입니다. 은하영웅전설의 루돌프 대제만큼이나 맛이 가서 대놓고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고 지껄이며 힘을 추종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동생과 살기 좋은 세상을만들겠다고 브리타니아를 엎으려고 하니까요. 무슨 제국의 폭정에 대한 반발이나 억압받는 민중을 걱정하는 마음 따위는 붕어빵에 붕어만큼도 없지만 그래서 차라리 정이 갑니다.
스자크처럼 사리분간도 못하면서 무조건 싸우면 안된다며 개똥철학 늘어놓는 바보에 비하면 머리는 돌아가니까요. 헌데 이 캐릭터는 아무래도 데스노트의 라이토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는 합니다. 제대로 썩은
썩소도 그렇고 사람을 장기말 다루 듯하는 행동도 그렇고 말이지요. 그럼, 를르슈에게 힘을 준 C.C.는 류크?

그냥 PPL이 전문인 거 같기도 하고…
나머지 캐릭터는 아직까지 많이 드러난부분이 없지만 학원 생활과 정치 활동의 두 부류로 나뉘는 거 같긴 합니다. 이야기도 계속 그런 식으로 전개 될 것 같고요.
결국 식민지니 제국이니 하는 배경 설정은 두 사람의 관계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두는 것은 과대평가인 것 같습니다.
악평만 잔뜩 쓴 것 같지만 작화 수준도 높고 앞의 이야기가 뒤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시청자를 짜증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다음 편을 기다리게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좋은 만화입니다. 별로 생각이 깊어보이지는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