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지 않고 바로 결말로 넘어왔습니다. 순서를 무시하고 시리즈를 읽는 건 드문일이지만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흔한일이지요. 하지만 다읽고나니 역시 순서대로 읽는게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의 말로는 지친기색이 역력하더라고요. 게다가 여자랑 자다니! 왠지 멋이 없어요. 여태봤던 것들이 물먹는하마가 들어있는 옷장같은 건조함을 지녔다면, 이건 가습기를 틀어놓은 병실 같아요. 하지만 읽는 속도는 '하이윈도' 보다 빨랐던 것 같습니다. 분량이 더 많았음에도요.
뭐, 책에 대한 감상은 그렇다치고 이 책이 '기나긴 이별'이니만큼 비교해볼 것이 있지요. 영화 '기나긴 이별'이요. 원작팬들이 화를 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습니다. 제목과 등장인물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작품이더라고요. 저는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지 몰라도 건조한 웃음이 나는 영화의 결말이 퇴락한 눈물을 머금은 책의 결말보다 좋습니다만, 내용면에서는 확실히 원작쪽이 훨씬 낫더라고요. 보다 짜임새 있고 캐릭터가 복잡했으니까요.
영화에서는 테리 레녹스를 말로의 오랜 친구로 설정해서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대폭 생략했는데, 이 설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걸 보았고 그렇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책을 보니 오히려 생판 남이었던 이와 몇 잔의 술을 나눈 정도의 사이면서도 그만한 위험을 무릅쓰는 게 또 납득이 가더라고요. 그 왜 있잖아요. '아침에 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났으니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는 식의 정서랄까요. 물론 그런 관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제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감상적인 행동에 크게 위화감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다만, 린다 로링하고 왜 그런 관계가 된 건지 이해가 안가더라고요. 그리고 범인은 미친여자라는 것도 다른데서 써먹었으면서 또 써먹나요. 시리즈 몇 권이나 된다고. 정말이지 몇 권을 읽어도 읽기 어려운 시리즈입니다.
내용 외적인 부분에서 마음에 안들었던건 말투였습니다. 안그래도 대화순서가 헷갈리는 편인데 같은사람과 대화하면서 경어와 반말을 오가면 어쩌자는 건가요. 급격한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말이 오가다가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탈자 같은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을만큼 짜증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건 번역의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되도록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겠다고 그런식으로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존댓말이란 게 없었을텐데 차라리 서로 반말하는 걸로 해버리는게 읽기는 좋았겠더군요.
어쨌든 이로써 '기나긴 이별'을 다봤습니다. 영화도, 책도요. 멋스러운 작품이란 면에서 둘다 좋네요.

쓰고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