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초라하고 멋없는 말로

Posted at 2009/11/19 22:02// Posted in 도서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번역 / 북하우스 


이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지 않고 바로 결말로 넘어왔습니다. 순서를 무시하고 시리즈를 읽는 건 드문일이지만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흔한일이지요. 하지만 다읽고나니 역시 순서대로 읽는게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의 말로는 지친기색이 역력하더라고요. 게다가 여자랑 자다니! 왠지 멋이 없어요. 여태봤던 것들이 물먹는하마가 들어있는 옷장같은 건조함을 지녔다면, 이건 가습기를 틀어놓은 병실 같아요. 하지만 읽는 속도는 '하이윈도' 보다 빨랐던 것 같습니다. 분량이 더 많았음에도요.

뭐, 책에 대한 감상은 그렇다치고 이 책이 '기나긴 이별'이니만큼 비교해볼 것이 있지요. 영화 '기나긴 이별'이요. 원작팬들이 화를 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습니다. 제목과 등장인물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작품이더라고요. 저는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지 몰라도 건조한 웃음이 나는 영화의 결말이 퇴락한 눈물을 머금은 책의 결말보다 좋습니다만, 내용면에서는 확실히 원작쪽이 훨씬 낫더라고요. 보다 짜임새 있고 캐릭터가 복잡했으니까요.

영화에서는 테리 레녹스를 말로의 오랜 친구로 설정해서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대폭 생략했는데, 이 설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걸 보았고 그렇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책을 보니 오히려 생판 남이었던 이와 몇 잔의 술을 나눈 정도의 사이면서도 그만한 위험을 무릅쓰는 게 또 납득이 가더라고요. 그 왜 있잖아요. '아침에 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났으니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는 식의 정서랄까요. 물론 그런 관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제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감상적인 행동에 크게 위화감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다만, 린다 로링하고 왜 그런 관계가 된 건지 이해가 안가더라고요. 그리고 범인은 미친여자라는 것도 다른데서 써먹었으면서 또 써먹나요. 시리즈 몇 권이나 된다고. 정말이지 몇 권을 읽어도 읽기 어려운 시리즈입니다.

내용 외적인 부분에서 마음에 안들었던건 말투였습니다. 안그래도 대화순서가 헷갈리는 편인데 같은사람과 대화하면서 경어와 반말을 오가면 어쩌자는 건가요. 급격한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말이 오가다가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탈자 같은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을만큼 짜증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건 번역의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되도록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겠다고 그런식으로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존댓말이란 게 없었을텐데 차라리 서로 반말하는 걸로 해버리는게 읽기는 좋았겠더군요.

어쨌든 이로써 '기나긴 이별'을 다봤습니다. 영화도, 책도요. 멋스러운 작품이란 면에서 둘다 좋네요.
2009/11/19 22:02 2009/11/19 22:02

「빅슬립」 젊고 싸가지 없는 말로.

Posted at 2006/07/26 02:27// Posted in 도서
「빅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번역 / 북하우스


하이 윈도를 읽은 김에 빅슬립까지 죽 읽었습니다. 빅슬립은 필립 말로가 나오는 첫 장편이라 그런지 젊고, 거칠고, 빈정대는 게 심하군요. 이야기 전개 역시 안녕 내 사랑이나 하이 윈도보다 더 거칩니다. 필립 말로가 나오는 건 세 권 읽어봤지만 그중에서 가장 추리보다는 모험을 한다는 느낌이 강하군요. 그리고 캐릭터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말로, 이 아저씨 33살이면 여자의 유혹에 아직 흔들릴 법한 나이인데 머리 나쁘고 악하다지만 예쁜 여자가 유혹하는데 비웃어 주는 감각이라니 진정 저렇게 빈정거리는 태도로 그 험난한 헐리우드를 살아왔다는 게 신기합니다.

처음에 석유로 부를 쌓은 재산가인 스턴우드 장군의 의뢰를 받고 그의 집에 갔을 때 스테인드 글라스에 묘사된 기사와 처녀의 그림을 보고 빈정거리던 것부터 시작해서 도박장을 운영하는 에디에게 위협당하는 순간조차도 꿋꿋이 빈정거리는 걸 보면 원래 성격이 상당히 삐딱한 사람입니다.

트렌치 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입에는 담배, 손에는 권총, 품 안에 술을 가지고 있는 정형화 되다시피한 모습의 최초가 필립 말로라니, 뒤에 나온 하이 윈도나 안녕 내 사랑을 읽으면서는 별로 못 느꼈던 그런 성격 나쁜 탐정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였습니다.

말로, 이 멋진 사람.
2006/07/26 02:27 2006/07/26 02:27
「하이윈도」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번역 / 북하우스


일고여덟 번은 읽은 것 같습니다. 삼분의 일 읽다가 덮었다가 다시 삼분의 이까지 읽었다가 다시 덮고는 내용 다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읽는 짓을 몇 번을 했는지, 끝까지 읽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더디게 읽게 된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제가 1940년대의 미국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 시절을 다룬 영화라던가 사진 자료 같은 것을 별로 접해보지 못해서 읽는 동안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질 않더군요. 어쨌든 한번 감을 잡으니까 끝까지 읽는데 무리는 없더군요.

하이윈도는 브라셔 더블룬이라는 희귀 동전이 사라진 일을 계기로 말로가 사건 의뢰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하지만 결말로 가면 동전이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지요. 요거 상당히 재밌더군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적대 관계인 것도 아니고 가해자나 피해자나 어딘가 썩어있는 사람들이고 작품 내에 등장하는 사람을 통틀어서 피해자로만 존재하는 사람도 하나뿐인, 이리저리 얽히고 꼬인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해결하는 방법도 정의나 진실을 밝히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요. 근 몇 년간 코난이나 김전일 시리즈 같은 일본식 추리만화를 주로 보다가  필립 말로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새롭군요.

다만 재밌기는한데 '그녀는 소옆구리살 처럼 놀랐다.'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묘사가 종종 튀어나와 당황스럽더군요. 역시 소설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2006/07/24 14:39 2006/07/24 14:39

「안녕 내 사랑」 처음 본 필립 말로.

Posted at 2006/05/20 15:31// Posted in 도서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번역 / 북하우스


얼마전에-코엑스에서 빙쵸탄 뽑았을 때.- '영화나 볼까'하고 강변CGV에 갔는데 상영시간까지 1시간 반 가까이 남아서 서점에 가서 뭉기적 거렸다.

그 때 어디서 본 듯해서 덜컥 산 책이「안녕 내 사랑(Farewell, My Lovely)」.

하드보일드 탐정의 효시다. 추리소설의 최고봉이다. 뭐다 주워들은게 있어서 잔뜩 기대하고 읽어보니 아가사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 같은 형식에 익숙해서 그런지 그다지 추리소설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뒤에 해설-작가와 작품 말고도 이것저것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반드시 읽어보는게 좋다.-하 고 옮긴이의 말을 보니 원래 챈들러 스타일이 그렇단다. 세세하게 트릭을 설정하고 파헤치기 보다는 그 당시의 좀 맘에 안드는 사회에서 어쩌다가 죄도 짓는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 직업윤리와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탐정이 끼어들든 휘말리든 관여하는 형식.

그런데 직업윤리와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탐정이라고해도 그것뿐.「안녕 내 사랑」에서의 말로는 별로 멋있지도 않고 특출나게 똑똑한거 같지도 않으며 키가 180cm인 말로를 어린애 다루듯 가지고 노는 거구가 셋이나-한명은 해를 안끼쳤지만.- 나와서 약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재수도 없어서 상당량의 마약을 강제로 투여 당하질 않나 얻어맞고 총뺏기고 그야말로 수난의 연속.

비록 교묘한 트릭이 얽힌 사건과 그 사건을 술술 풀어내는 천재 탐정을 좋아하지만-미스 마플과 셜록 홈즈나 코난이라든가 김전일이라든가.「얼룩고양이 홈즈」도 괜찮았고.-이건 이거대로 재밌어서 지금은「하이 윈도(The High Window)」를 읽고 있다.

음...그리고 이건 책 자체에 대한 불만인데. 깔끔한 양장본인건 좋지만 때가 너무 잘 탄다는게 흠.


네이버 블로그에 2004/10/30 02:26에 올렸던 글.

2006/05/20 15:31 2006/05/20 15:31

EBS에서 「기나긴 이별」을 보다.

Posted at 2006/03/12 11:23// Posted in 영화


EBS의 기나긴 이별 소개

챈들러의 책은 '하이윈도'와 '안녕, 내 사랑' 정도만 읽었는데 EBS에서 기나긴 이별을 해준다길래 봤는데 영화내내 흐르는 The Long Goodbye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에 다양한 편곡으로 같은 곡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처음 시작할 때 테리와 말로를 각각 보여주는 부분에서 노래 또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부른 걸로 들려주는데 시작부터 영화에 취하게 하더군요.
화면과 음악이 잘 어우러져 좋았습니다.

배우들 연기야 아는게 없으니 별로 쓸말은 없지만 필립 말로 역을 맡은 엘리엇 굴드가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1인칭으로 전개되는 소설의 맛을 살린 게 좋더군요.

챈들러는 미려한 문장으로 글을 쓰지만 추리가 약하다고 하지요. 영화도 그렇더군요.
도망가는거 도와 달라는 친구 테리와 남편 찾아달라는 아줌마와 테리가 들고간 내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건달이 서로 얽혀서 돌아가는데 제가 따라가기 어려운 추리를 합니다.

머리가 나빠서 못따라가는 거 아니냐 할 수 도 있지만 글쎄요, 어째서 말로가 그런식으로 실비아와 로저를 연관 지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말로가 모리 코고로와 같은 부류였나?

하기야 애초에 사람에 대한 표현이 재밌는 작품이지 추리는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필립 말로야 특유의 빈정거림과 사립탐정의 프로정신만 살아있으면 헐리우드에서 살아갈 수 있을거고.

아무튼 오랜만에 TV에서 재밌는 영화를 봤습니다. 단지 19금인데 말로네 옆집여자들 뿌옇게 처리한게 아쉬웠습니다.
 
2006/03/12 11:23 2006/03/12 11:23